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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주택분야] 화조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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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구획하다 

건축주는 기능이 집약된 긴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고, 자연과 가까운 집을 짓 고자 했다. 가족이 요구한 집은 40평 남짓의 규모로 기존 아파트의 크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프로젝트는 200평이 넘는 땅의 크기의 비해 작은 집이 주변 자연과 어떻게 균형 있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화조풍월은 집 안팎으로 변화하는 자연을 담아내기 위해 다각적으로 시도한 결과다. 집과 자연이 맞닿는 접점을 넓히기 위해 외부 공간 또한 집의 방과 같은 개념으로 인식했고, 전체 대지는 매스 배치가 아닌 평·단면 계획 을 통해 공간을 만드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넓은 땅에서 집과 자연이 최대한으로 닿을 수 있도록 낮게 펼쳐진 단층으로 계획했다. 넓은 대지의 중심에는 큰 지붕을 계획하고 가족을 위한 공간을 두었다. 그 지붕을 중심으로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고려해 내·외부의 공간을 확장했다. 빛과 그림자, 소리, 계절, 시간 등의 비물리적인 요소들을 공간의 단면적 형상, 공간과 공간 사이의 틈, 공간을 감싸는 재료의 물성 등을 통해 공간의 분위기를 만들고, 자연의 변화를 공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배경으로서의 재료와 재료의 감각 

화조풍월은 원래의 자연과 만들어진 자연(바깥 정원, 안마당)이 주인공인 집이다. 자연을 담아내기 위해 최소한의 기능을 위한 공간으로 구획하고 크게 비워냈다. 크게 비워진 공간은 새소리와 꽃과 나무, 바람의 움직임들로 시시각각 다르게 채워진다. 내외부로 크게 비워진 공간을 에워싸는 물성은 노출 콘크리트다. 노출 콘크리트는 합판 거푸집, 각재 심기, 표면 갈기, 표면 쪼기(치핑)의 4가지 다른 방식으로 구축된다. 서로 다른 질감의 노출 콘크리트 표면은 각 공간의 감성과 함께 맞닿는 주변 환경에 따라 다르게 드러난다. 땅과 직접 닿는 기단부는 땅의 질감이 연속된 느낌의 표면 쪼기(치핑) 방식을 적용했다. 사람들의 손이 가장 많이 닿는 중간 부분은 매끈한 합판 거푸집을 활용했다. 정원의 중간부는 식재의 계절의 변화와 빛의 움직임을 받아들이기 위해 다소 거친 질감이 균질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표면 갈기를 적용했다. 가장 빛을 많이 받아들이는 건축물의 상부는 각재 심기 후 탈거해 가장 거친 세로 줄무늬의 질감을 주었다. 상부는 하루 동안의 빛의 움직임이 가장 활발한 부분으로 시간에 따라 다른 방향과 깊이의 그림자가 드리워 집이 자연과 좀 더 입체적으로 반응하도록 했다. 세로 방향의 거친 질감은 주변 나무의 질감과 중첩되어 보이면서 자연스럽게 주변 풍경과 동화된다. 자연과 가장 가까운 별채는 목재를 사용해 천연 나무의 본래 색에서 빛이 닿아 점차적으로 노출 콘크리트와 같은 회색으로 변화하는 질감을 통해 자연스러운 시간의 흔적을 보여주고자 했다. 


감각적 기억의 장치 

화조풍월은 넓은 대지의 중심에 가족을 위한 상징적인 공간이 자리하면서 시작된다. 기존의 집과 같은 거실, 식당이라는 기능의 제안이 아닌 세대를 이어서 가족을 연결해 줄 수 있는 다른 집에는 없는 우리 집만의 기억의 공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하였다. 크게 비워진 공간은 가족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고, 아이들이 공부도 하는 등 무엇으로든 채워질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기능을 담기보 다 기억의 장치로서 공간에 흐르는 분위기를 계획하고자 하였다. 한 지붕 아래 서로 맞대어 사는 가족 에게 반원형의 큰 천장을 제안했다. 거대한 천장은 최소한의 구조로 지지해 내부를 비워내 창을 열면 안팎의 자연과 연결되는 ‘루(樓)’가 된다. 천장의 마감은 내외부의 경계를 모호하게 설정하기 위해 구조를 그대로 드러내는 노출 콘크리트로 계획했다. 노출 콘크리트의 거친 마감은 해와 달을 보며 살고 싶다는 건축주에게 달의 표면을 연상하게 하는 은유와 감각의 장치다. 떠있는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지붕의 네 면이 벽과 만나는 경계에 틈을 만들었다. 벽과 지붕 사이의 틈은 집 안에서 하늘을 볼 수 있는 장치인 동시에 틈으로 들어오는 빛을 통해 시간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상징적 지붕 아래 무색, 무취의 비워진 명상적 공간은 가족들에게 온전한 휴식과 특별한 기억의 경험을 공유하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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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단독주택에서 어린 두 자녀를 키우고자 이주한 한 가족을 위한 약 230㎡의 연면적을 가진 1층 규모의 집이다. 모여 사는 방식의 전제와 그에 맞는 기반시설이 갖추어지기 전, 집들이 먼저 들어서기 시작한 지역의 나대지에 위치한다. 대지를 둘러싼 지형 조건, 건축주의 바람과 요구 조건을 충실한 반영하는 것 이상으로 어떠한 기대를 할 수 있을까. 단독주택에 설계자가 담고자 한 시도들을 어떻게 가치매김 할 것인가의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화조풍월」의 지붕 형상에 ‘달’을 연결하는 은유적 고안 과 흙과 빗물에 의한 변화를 예기하는 콘크리트 텍스쳐의 고안은 감각적이고, 거주성의 본질이 하늘과 만나는 방식, 땅의 경계를 정하는 방식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오래된 전제를 환기한다. 지붕의 공간을 중심으로 배치된 거실과 식당, 아이방의 위치, 안방을 나누는 복도와 현관의 역할이 전형적이지 않지만, 설정된 경계와 전제된 규준선의 원칙을 엄격하게 따르며 공간으로 조직화한다. 건축주의 바람으로부터 단서를 추출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물질화하는 설계자의 의도가 명확하다. 직관적으로 설정한 감각적 경험으로부터 배치의 질서를 부여하고 공간을 조직하는 큰 원리로 설정하는 방식은 보편적이지 않지만 대담하고 용기있다. 오늘날 우리의 단독주택에서 흔치 않은 이 시도를 높이 살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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