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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민간분야] 최양업 신부 탄생기념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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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고 소박하나 우아한 모두의 성소聖所

최양업신부는 조선 최초의 신학생이자 한국천주교회의 두 번째 사제다. 그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재)대전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청양 다락골의 생가터에 최양업 신부를 기념하는 경당을 계획했다. 경당은 청양군에서 지역의 관광진흥사업으로 진행 중인 ‘다락골 관광자원 정비사업’의 핵심이 될 곳이다. 청양의 다락골 성지는 한국 가톨릭교회뿐만 아니라 청양의 역사적·문화적 거점 중 하나로 가톨릭 신자들의 성지순례와 청양군의 관광자원으로서 역할을 해왔다. 최양업 신부의 생가터에 경당 을 짓는 것은 그의 순교 정신을 기억하는 것이며,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자신을 돌아보는 ‘터’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한다. 탄생기념경당은 최토마스신부가 흘린 땀과 정신을 느낄 수 있도록 그가 마지막을 지낸 죽림굴竹林窟의 모습을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만든 건축이다.


축복식, 건축가 이야기 

5월 말 토요일 11시였어요. 길에서 40분 산길을 걸어 땀이 범벅이었어요. 그 날 온도는 24도, 동굴 입구는 14.5도가 찍혔죠. 동굴 안은 6.5도에 습도 40%. 바위 표면은 -1.5도였어요. 6월 말인데.

동굴의 깊은 어둠에 눈이 점점 순응을 시작했죠. 입구로부터 들어오는 빛은 10 룩스(lux). 동굴 앞은 초록의 참나무 숲이 가득하고 동굴은 고요했어요. 아… 하고 소릴 던졌어요. 소리는 울림이 없이 짧게 돌아 다시 귀에 닿더군요. 거친 표면 때문이죠. 조금 뒤 바람이 불자 숲의 소리는 세찼어요. 사그락사그락 쏴아아. 동 굴에선 38데시벨(dB) 정도의 묘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나 두려움 속에 피신 중이던 당신이라면 나졸들이 그를 잡으러 온 것이 아닐까 흠씬 놀랠만한 소리 같았어요. 이런 긴장과 서늘함으로 여기서 6개월을 보내셨구나.

동굴은 20평 남짓, 폭 4.5m 깊이 13m, 높이는 3m가 안 되는 길쭉하고 경사진 곳이에요. 특별한 건 제일 낮은 곳에 제대가 있어요. 신자들을 올려다보며 미사를 드린 곳 같아요. 마흔 살 최양업이 지내며 느꼈던 온전한 흔적이에요. 경당의 제대는 그곳에서 생각을 확신했어요. 섬기는 자의 자세로.

새터는 양업이 태어나서 6년을 보낸 곳이에요. 그가 바라봤던 풍경, 느꼈던 바람과 새들의 지저귐은 200년이 지났지만 그대로예요. 부모인 최경환성인과 이성례복자의 오랜 터전이기도 하죠.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이 6살 양업이 바라본 풍경을 보면서, 40살 토마스 신부의 마지막 흔적인 죽림굴의 느낌을 전달받았으면 했어요. 마지막을 지낸 그 동굴처럼, 외부의 변화와 무관한 공간 속에서 자신과 그분을 만났으면 해요.

경당으로 들어가는 길은 짧지만 길고 어두운 통로로 눈이 적응하는 시간을 위해 만들었어요. 동굴 속 어둠을 만나기 위한 준비에요. 제대의 자리는 죽림 굴의 상황과 태도를 닮게 낮은자리로 만들었고, 천정엔 9만 리 밤길을 걸으며 만났던 조선의 별자리 ‘천상분야열차지도’를 새겼어요. 돌 제대는 다락골성지 의 사제관 마당에 박혀있던 돌이에요. 제대를 만들 돌을 고민하던 때 ‘이건 어때요’라며 신부님과 사무장께서 툭하고 말했죠. 돌은 운명처럼 이곳에 쓰이기 위해 기다린 것 같았어요.

토마스신부님, 당신의 시간은 밤 같아요. 지금은 낮이고 미사 시간도 정오에 가깝지만, 이곳이 당신의 느낌이었으면 좋겠어요.

건축가인 저도 여기에 쓰이기 위해 준비된 거 같아요. 당신의 도구죠. 저는 부산 소년의집의 창립자인 소알로이시오 신부님을 위한 도구로 오래 쓰였어요. 건축가인 내가 생각하고 고민하고 설계하지만 결국 그분의 손바닥에 있고 나 를 도구로 쓰고 있구나라고 여러 번 느꼈어요. 이번도 같아요. 알게 되고 공부하고 끌리고 깨닫고 묵상해서 건축으로 담아내 그분의 공간을 만들었어요. 소 알로이시오 신부님도 최양업 토마스신부님도 모두 가경자네요.

이곳은 사도요한 신부의 초대로 사도요한이 생각하고 손길을 얹었어요. 토마 스신부님을 공부하고 느끼고 그것을 바탕으로 제안을 했고 요한신부님은 온전히 받아줬어요. 기쁘게. 위대한 의뢰인이죠. 이곳에 오는 모든 이들도 저처럼 그렇게 환대받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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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최양업 신부 탄생 기념경당은 조선 최초의 신학생이자 한국천주교회의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를 기리기 위해, 다락골 성지와 가까운 신부의 생가터에 세워진 경당이다. 성소로서 신을 향한 종교적 공 간의 본질과 기존 사회질서와 대척점에 선 조선 천주교의 역사성 속에서, 설계자는 최양업 신부의 생애를 온전히 공간으로 소환했다. 어두운 긴 복도를 통해 들어가 만나게 되는 경당은 대나무 거푸집으로 조각된 오목한 수평줄의 콘크리트 질감으로 최양업 신부가 마지막 3개월을 보낸 동굴을 형상화한다. 아래로 꺼진 제대의 길고 커다란 돌은 은둔하며 미사를 집전하던 사제의 고독함과 간절함을, 천창 간접광 안에서 부유하는 밤하늘 별자리 천장은 사제를 기다리던 교우촌을 찾아 조선팔도를 누비던 신부의 고단했던 9만리길 밤길 여정을 이야기해준다.


 「최양업 신부 탄생 기념경당」은 작고 소박하지만 공간은 강렬하고 경건하다. 사제의 생애는 헌신과 실천으로 신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고, 경당의 터와 지역은 조선 후기 근대시기의 역동적 역사를 증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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