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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사회공공부문] 서소문역사공원 및 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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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로부터 400여년 간 이곳은 국사범들의 처형장으로 쓰였다. 특히 1801년 신유박해부터 1866년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신념과 신앙을 견지했던 많은 천주교인들이 처형된 곳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이곳은 일개 종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한국 근대사의 일면이 새겨진 민족적 집단의 장소성을 발휘하고 현전하는 땅으로서 큰 의의를 가진다. 1973년 이곳을 근린공원으로 지정하여 공공의 휴게를 위한 공원으로 조성하였으나 경의선 철로와 서소문 고가로 인해 접근로가 차단된 음지의 공간으로 전락하였고, 중구의 재활용쓰레기처리장과 900여대의 공영주차장 등이 공원 하부에 만들어지는 등, 시민의 휴식공간으로서의 한계를 드러냈다.

우선 숲으로 공원을 감싸 안과 밖을 만들었다. 채워진 숲과 그 숲이 만든 비어있는 마당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잠재력을 내포한 공간이 되었고, 숲은 그 자체가 밀도를 달리하여 도시와 반응한다. 숲과 비어있는 공간 사이에 건축물을 두어 새로운 레이어를 형성하였고 숲과 건축물이 하나의 덩어리로 짜이면서 빈 공간에 마당이 만들어진다. 수 십 미터를 직선으로 뻗어있는 진입램프에서 시작하여 진입광장에 들어서면 처음으로 하늘이 열린 보이드를 접한다. 박물관 내로 진입하면  7.5×8.0m 격자로 반복되는 로비를 마주한다. 1.5×1.5m 십자기둥에 의해 독자적 위상을 갖춘 단위그리드의 공간을 거치면 지하의 전당을 두르는 어두운 램프로 발을 들인다.

내려가는 램프의 한 코너에는 성인 정하상을 기념하는 기념경당이 있다. 이곳은 매일같이 미사가 열리어 그의 넋을 위로함과 동시에 모든 순례자들의 마음을 가다듬게 한다. 경당의 리버브는 설교자의 인토네이션에 숭고의 레이어를 한층 더 쌓으면서 청동의 문 밖의 램프에도 울려퍼진다. 램프의 끝에 다다르면 지면으로부터 14m 아래에 짙게 드리워진 25×25×10m 입방체 튜브 속 어둠의 공간이 신념을 다한 위인들을 위한 기념의 공간으로 존재한다. 사방이 열린 채 떠 있는 두께 1.5m 벽은 경계를 분명히 드리움과 동시에 누구나 환영하는 2m 높이의 틈을 통해 자연스럽게 고개 숙이는 자세로 진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구상하였다. 이 곳에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지만 영롱한 빛 우물을 통해 전당의 바닥이 있음을 알린다.

기념전당에 응하여 반대편에는 찬란히 하늘로 향한 광장이 병렬해 있다. 기념전당을 거쳐 33×33×18m의 사방이 무표정한 벽돌벽으로 둘러쌓여 하늘로 자연스럽게 시선을 유도하는 광장에 도달한다. 압도적인 스케일에 자기 자신의 미약한 존재감이 각인되지만, 하늘과 교우함으로써 그 존재감은 빛나길 기대하는 공간적 장치이고, 정점의 피날레 공간이 된다.

아득한 공간을 경험하고 새롭게 단장한 순례자는 하늘광장 밖을 에둘러 놓인 램프-하늘길을 오르면서 현실에 다시금, 그러나 전과는 다른 자신이 되어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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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위치 : 서울 중구 칠패로 5
용도지역 : 자연녹지지역, 방화지구
주요용도 : 문화 및 집회시설
대지면적 : 21,363㎡
건축면적 : 385.07㎡
연 면 적 : 24,526.47㎡
건 폐 율 : 1.8%
용 적 률 : 1.5%
규    모 : 지상1층, 지하4층
구    조 : 철근철골콘크리트조
설 계 자 : 윤승현 / (주)건축사사무소인터커드
시 공 자 : 동부건설(주)
건 축 주 : 서울특별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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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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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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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1층 편의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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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상 기념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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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상 기념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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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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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정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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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기획전시

심사평

서울 중심의 버려진 도심을 재생하는 본 프로젝트는 단절된 도시 공간을 연결하고, 잊혀진 역사를 다시 살려내는 공공적 가치를 십분 살려낸 역작이다. 과거 개발시대를 반영하는 쓰레기소각장과 지하주차장, 그리고 오랜 시간 노숙자들의 쉼터로 활용된 장소적 악조건을 극복하는 가운데 전근대와 근대가 충돌한 순간에 발생한 역사적 비극을 성숙한 방식으로 현대사회에 환원시키기란 쉽지 않은 과제이다. 그럼에도 건축가는 밝음과 어둠, 지상과 지하, 자연과 인공, 채움과 비움의 대비라는 건축적 장치를 십분 활용하는 가운데 현재의 일상적 시간을 과거의 역사적 사건으로, 그리고 다시 미래적 가치로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처음 설계공모 당선안에 담긴 명증함이 사업진행과정에서 다소 희석된 부분이 있어서 아쉽지만 작품에 담긴 공공성의 가치는 결코 훼손되지 않는다. 근래에 보기 드문 역작이다. (전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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