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2021 WE78
본문
인간과 도시는 서로에게 끊임없이 영향력을 주고받는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복합적 요인들이 얽혀 도시는 변화하며, 이 안에서 건축은 그 구성요소이자 도시가 진화하며 만들어내는 산물이다.
1970년대 들어서 서울 강남이 개발되며 빈 땅과 나무들이 점차 사라지고 단독주택들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그 후 상업과 교육 인프라가 많은 강남으로 인구가 몰리면서 그들을 수용하기 위해 기존의 1~2층 단독주택이 헐리고 4~5층의 다가구·다세대주택으로 대체되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더 세부적인 도시계획이 수립되었고, 역세권 등의 교통요지에는 주거지역보다 용적률이 높은 주상복합과 오피스텔과 같은 새로운 도심주거형태가 나타났다. 그리고 지난 20~30년간 다세대주택에서 거주하던 사람들은 이제 더 현대화된 시설의 고층 주거타워로 이동하고 있다.
주거와 근린생활시설이 공존하는 일반주거지역에는 다세대주택을 대신할 새로운 수요들이 생겨나고 있다. 주로 IT, 광고, 디자인 등의 경제, 사회의 변화를 선도하는 회사의 보금자리이다. 젊은 구성원이 많은 이런 회사들은 기존의 무미건조한 사무공간을 벗어나 각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낼 수 있는 개성 있는 공간을 찾곤 한다. 이들은 경제적 성장을 이루어 회사의 사옥을 짓는 경우도 있고, 잘 지어진 공간을 임대하여 입주하기도 한다.
WE78은 이런 젊은 회사를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물이다. 이들을 위한 창의적인 업무공간은 내·외부 공간에서 사람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층고가 높고 낮은, 폭이 좁고 넓은 다양한 공간 속에서는 더욱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된다. 특히 근무자들이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만큼, 사무공간은 주거공간에 준하는 수준의 자연채광과 환기가 이루어져야 하며, 때로는 외부에 접한 발코니나 베란다에서 바람을 쐬고 동료와 대화를 나누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바닥면적에 포함되지 않는 외부공간인 발코니와 베란다, 그리고 옥상 등은 최대 용적률의 제약을 벗어난 여유 공간이다. 이 공간들은 한정적인 실내면적을 외부로 더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각 층의 매스를 엇갈려 생기는 아래층의 상부공간은 자연스럽게 위층의 베란다가 된다. 이는 일반주거지역의 자잘한 도시적 맥락 속에서 단일 매스가 지나치게 비대하게 보이는 것을 막아준다. WE78의 주변에는 아직 비슷한 신축건물보다는 주거용도인 다세대주택이 많은데, 업무공간이 주를 이루는 근린생활시설 설계 시 가장 염두에 둔 것들 중 하나는 주위 창들의 시선이다. 이웃들과의 마찰이 빈번하게 생기는 부분이므로, 현장조사 시 이 점을 고려하여 입면계획에 반영하였다. 그리하여 일반적인 수직 창을 무작정 늘리기보다는, 엇갈려진 매스의 틈 어딘가 적절한 곳들을 천창으로 만들어 실내 자연채광을 풍부하게 들인다.
실내에서는 천장고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천장재를 설치하지 않았다. 그리고 각종 천장 설비들이 구조 하부로 지나가는 것을 피하고,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배관을 정리하기 위해 미리 구조체에 슬리브를 계획하여 시공하였다. 기준층의 층고는 3.6미터이나, 지하와 최상층인 5층은 5미터 이상으로 계획하여 높은 층고가 필요한 용도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지하에는 북서쪽 모서리에 선큰을 만들어 자연채광이 깊숙이 들어오도록 하였다.
도시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해왔고, WE78은 다른 어느 때도 아닌 지금의 도시가 만들어낸 결과물로서 의미가 있다.
---
대지위치 : 서울 강남구 논현동 78
용도지역 : 도시지역, 제2종일반주거지역 (7층이하)
주요용도 : 제2종근린생활시설
대지면적 : 280.80㎡
건축면적 : 158.79㎡
연 면 적 : 739.25㎡
건 폐 율 : 56.55%
용 적 률 : 199.35%
규 모 : 지하1층, 지상5층
구 조 : 철근콘크리트구조
설 계 자 : 조성욱 / ㈜조성욱건축사사무소
시 공 사 : ㈜예지인종합건설
건 축 주 : ㈜욱은
사진작가 : 조성욱, 박영채
주거, 상업, 사무 등 비슷한 프로그램의 이웃들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 동네에 들어선 프로젝트다. 주변과 비슷하게 사무, 상업공간들이 입주 예정인 것으로 보인다. 작은 건물이지만 밀도가 높은 동네에 들어서면서 감춰야 할 속살과 그 가운데 상업적, 실리적 이유로 드러내야 할 부분들 사이의 셈법이 복잡했을 것 같다. WE78은 이 상황에서 건축이 가져야 하는 포지션에 대한 고민이 재료나 형상을 통해 뛰어나게 표현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지배적인 조형은 무겁고, 두껍게 모여 쌓여서 만들어지는 벽돌벽과, 가볍고 얇으며, 가능한 큰 모듈의 판으로 만들어지는 유리벽 사이의 긴장감을 통해 표현된다. 각 재료가 갖는 기본 성질의 차이를 감추거나 평준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과장되게 매스의 형태로 변화시켜나가면서 그 긴장감이 더 커진다. 주요 구조가 감춰지고, 가벼운 유리가 무거운 덩어리들을 버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초기 계획에서는 주변 맥락 속 요구조건에서부터 도출되었을 불투명과 투명의 아슬아슬한 균형이 조형과 외피로 이어지며 일관되게 유지되어 건축의 지배적인 개념까지 만들어내고 있는 점이 인상깊었다. (신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