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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광명 볍씨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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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새로 건축을 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가장 염려하는 것은 새로 만들어진 학교가 너무 편해질까봐, 그래서 아이들이 너무 편한 것에 익숙해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이해한 볍씨학교의 철학은 "불편한 학교" 이다.
기존의 학교는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웠다.
대신 그래서 겨울에는 따뜻한 방바닥에 옹기종기 모여서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고, 여름에는 더위를 피해 학교주변의 산에서, 나무 그늘 아래에 모여 앉아 불어오는 바람에 더위를 식힐 줄 아는 삶의 지혜를 배우고, 수돗가의 작은 물줄기의 시원함과 소중함을 배운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울때는 더위를, 추울때는 추위를 참아낼 줄 아는 인내심을 배운다.
기존의 학교는 교실과 화장실, 수돗가, 식당 등이 모두 따로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교실에서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와야 하고, 수돗가에 가기 위해서도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하루에도 여러번 아이들은 교실에서 나와 바깥공간의 흙을 밟아야 한다. 이는 한번 학교에 들어가면 체육시간과 집에 갈 때를 빼고는 밖에 나올 일이 없고, 심지어 교실이 있는 층 말고는 다른 층에 갈 일도 별로 없는 대부분의 다른 학교에 비하면 불편할 수 도 있다.
하지만 볍씨학교의 아이들은 덕분에 햇살이 좋은 날엔 햇살의 따뜻함도 피부로 느낄 수 있고, 비가 올 때는 비가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비를 맞으면서 몸이 젖는 느낌, 비가 나무와 땅에 부딪쳐 만들어 내는 물방울의 움직임을 모두 느낄 수 있다. 바람이 불 때는 바람 소리도 들을 수 있고, 바람이 몸에 와 닿는 느낌도 수시로 느낄 수가 있다. 또 눈이 올 때는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고, 쌓인 눈을 밟아야만 한다.
이처럼 아이들은 설령 원하지 않더라도 생활을 위해서는 자주 외부로 나갈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자연의 변화를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되며, 이를 통해 아이들은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고, 그 안에서 정서적으로 매우 풍부해 질 수 있다.
이 것이 자연과 가까이 살아갈 때 얻을 수 있는 이로움이다.
우리가 계획한 학교도 역시 "불편" 하고자 했다.
어쩌면 기존의 학교보다 더 "불편" 해 졌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여전히 비바람이 불고 눈이 올때도 화장실과 식당 혹은 수돗가와 심지어 다른 교실에 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신고 밖을 나가야 한다. 아니 오히려 어떤 아이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 3층에서 신발을 신고 외부 계단을 내려와 다른 교실 앞을 지나 땅을 밝고 걸어서 화장실에 가야 한다.
이제 아이들은 2차원의 공간이 아닌 3차원의 공간을 수시로 움직여야 한다.
가는 길에서 자연의 변화도 느껴야 하지만, 다른 교실의, 다른 공간의 아이들을 또한 만나야 한다. 이렇듯 많은 아이들은 3차원의 공간에서, 실내와 실외가 섞인 공간에서 수많은 움직임을 통해 다양한 흐름을 만들어 낼 것이다.
각각의 교실은 기존의 학교보다 더 넓고 쉽게 자연과 통할 수 있고, 아이들은 더 쉽게 실내와 실외를 넘나들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통해 이 학교는 진정한 생명력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