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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아날로그 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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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는 주요 키워드는 디지털이다. 현대사회에서 디지털의 개념이란 더 이상 수치적, 기술적 모습과 방법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디지털 기술과 방법이 만들어낸 주제, 내용물, 즉 콘텐츠라 칭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디지털개념에 빚을 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의 개념은 상대적이다. 0과1의 반복적인 디지털신호가 보여주듯 더 빠르게, 편하게라는 디지털 이념은 도시의 지하철 인프라와 맞아 떨어진다. 사람들은 거대한 디지털 인프라 스트럭쳐를 통해 이동한다. 지하철은 매우 통합적이고 정형화된 공간 형태가 반복되며 그 이면에는 아날로그가 부재된 공간들이 존재 하고 있다. 디지털 패러다임에 입각한 지하철 공간의 특성은 기계주의적인 모습과 차가운 속성, 그리고 이동이란 의식 등에 의해 각 공간에 있어서 중간적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존재며 이러한 디지털적인 지하철의 특성은 인간에게 불안한 요소로 인식되어 급격한 변화 속도에 맞추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끊임없는 긴장과 행동에 있어서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에게는 의도적으로 시간을 느리게 만드는 아날로그한 공간이 필요하다. 정형화된 지하철의 유휴공간을 찾아 일부분을 잘라내고 덧붙이는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턴테이블과 프로그램 박스는 도시전반에 끼어들어 갈 수 있도록 디지털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기능은 지극히 아날로그하다.
아날로그 칩은 인간에게 아날로그적인 행위를 유도하여, 도시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굳어진 공간을 긁어내며 사회적 소통을 위한 이벤트를 제공하게 해주는 장치다. 다시 말해 아날로그 칩의 삽입은 단순한 과거로의 후퇴, 불편함의 고통을 추구함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의 회유이며,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사회소통의 단절 속에서 인터페이스 장치의 역할과 더불어 도시전반에 걸쳐 적용이 용이한 프로토타입의 제안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디지털 신호와 다른 0과1사이의 ‘여백과 공간’이 소통과 각각의 공간들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무한한 가능성과 ‘다름’이 존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주길 기대하는 것이다.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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