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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양평의 식민화된 중심성 회복을 위한 양근나루터 재활성화 계획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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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양평은 애당초 서울에 매인 자리였다. 양근(옛 양평)일대는 조선 후기 남한강 하류의 중요 장시가 섰던 곳으로 각종 곡류와 물자들이 송파와 사평장을 거쳐 한성으로 당도했다. 곧 당시 양평장은 단순한 경제 중심지 개념을 넘어 경성과 한반도 남쪽 일대를 수로로 잇는 지점에서 큰 장을 형성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개화기를 거쳐 철도와 육로 교통망이 발달하며 수운중심의 상업중심지로서의 양평은 힘을 상실하게 되고 해방 후에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고 70~80년대의 이촌향도를 겪으며 경기도지역의 단순한 촌락으로 변모한다. 90년대 이후, 자동차 보급률이 급격히 늘어난 수도권의 팽창으로 양평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데, 이른바 ‘서울시민을 위한 관광, 전원지로서의 양평’이다.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이 양평의 문제점은 바로 양평 읍내임을 분명히 하고 싶다. 서울 사람들이 그리는 양평의 모습은 자연의 기운이 질펀한 그런 모습이다. ‘양평에 간다’는 것은 대개 양평의 행정과 경제중심지인 양평읍내에 간다는 것이 아니라 각종 위락시설과 자연 문화 유적지가 있는 외지지역을 소풍삼아 방문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6번국도를 타고 서울에서부터 달려온 사람들은 양평 관내에 들어서며 각 강가와 골짜기, 그리고 계곡들로 흩어져 간다. 그리고 그곳들은 이제 단순히 서울사람들이 찾아가는 양평의 중심공간일 뿐만 아니라 양평에서 농사를 짓거나 일대에서 상업 또는 서비스업 등으로 전환하며 살아온 이들의 관심까지 끌어당겨 ‘양평 사람들의 새로운 중심공간’ 성격마저 갖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문화’,‘예술’,‘돈’,‘기회’가 집중되기 때문이다. 각지에 사통팔달 뚫린 아스팔트 도로들은 양평군의 각 골짜기와 산하를 양평읍내보다는 서울의 시내 여러지점으로 연결하기 시작했다. 서울 사람들 생활에 적극적으로 포함되기 시작한 양평이다. 서울사람들은 양평에 ‘중심성’을 부여하고 단순히 방문할 뿐만아니라 자리잡고 살고 있다. 곧 양평을 서울에 대한 대체물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렇게도 원했던 ‘중심’을 품안에 받아들임으로써 중심으로의 종속이 강화된 셈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더 잘된 것인가? 중심성이 골고루 분산, 해체되어 양평 읍내라는 중간 형태의 중심성도 필요 없을 만큼 양평의 모든 자연마을과 골짜기, 강가들이 각자 주민들의 정체성과 의미를 담는 공간으로 실현된 것인가? 실은 그렇지도 않다. 그것은 ‘식민화된 중심성의 파행적 이식’임에 틀림없다. 외부의 거대한 중심성에 대한 종속이 무엇보다도 심각했던 것이다. 양평 읍내는 그렇게 스스로 갖고 있던 기억속의 역사성과 정체성의 공간들을 순순히 내주고 분열되게 놔두고 있었다. 그때그때 스스로의 전설들을 도려내어 팔아먹고 있는 것이다. 양근나루와 객사, 갈산 등의 의미에 대한 망각이요 무관심인 것이다. 생활, 정치, 경제의 중심이어야할 읍내의 도시는 이제 그 의미가 빠져나간 채 회색빛 고탐시티로 변모해버렸다. 하지만 양평은 너무나도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잘 보존된 자연, 경제적 자생력을 제공할 수 있는 서울이라는 자원을 가진 소도시...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 양평의 도시에는 그 의미와 기억과 경관과 생활의 중심을 세울만한 곳이 없는 듯하다. 바로 양평의 정체성을 담는 공간이 양평읍내에 없기 때문이다. 양평의 정체성은 양평이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자연속의 양평’ 그 자체이다. 양평 읍내가 중심이 되는 타운이 되려면 바로 그 수려하고 기억이 가득 담긴, 기운이 풍성하고 정감있으며 역사성이 담긴 ‘자연’을 양평 읍내 한가운데로 안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양평 읍내의 중심지는 대지로 설정된 지역에서 남한강과 단절된 현상을 보이고 있다. 남한강 정비사업에서 실시된 이른바 13m의 거대한 제방을 쌓게 되면서 양평읍내와 남한강은 크나큰 공간의 단절을 겪었다. 양평 사람이건 서울 사람이건 6번국도의 정점에서 맞이한 이 양평읍내에서는 그 어떠한 강과의 교류를 겪을 수 없으며 자연을 맛보지 못하기에 그렇게 읍내는 외면당하는 것이다. 이렇게 ‘단순배후지’로 전락한 양평읍내는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자연을 담아낼 수 있어야 그 본래의 중심지로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강이라는 것이 과거에는 교통로에서, 최근에는 휴식과 레져의 장으로 변한 점에 주목하여 이 13m옹벽에 건축적인 작업을 통하여 6번국도와 맞닿아 있는 이 가능성 높은 대지에 남한강과 양평읍내의 수직적인 차이를 극복하고자 한다. 대지는 과거의 양근나루터 지역으로 현재는 그 이름만 남아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어있다. 제방 상단부는 석재공장의 야적장으로 옹벽기단 상부에 버려진 땅을 수습하여 사용하고 있다. 대지를 포함한 긴 형태의 블록에는 양평군청, 양평초교, 교육청이 위치하고 있지만 단절된 절벽의 끝에 위치하여 단순한 행정적 기능만을 수행하고 있을 뿐, 수변공간으로써의 그 어떠한 기능도 수행해내지 못하고 있다. 하여 이 제방 상단의 간선도로를 보존하며 동시에 그 하부공간으로 물을 끌여들여 아주 직접적이고 강력한 형태로 물과 양평읍내를 소통하고자 한다. 또한 양평 각지의 정체성인 자연 그 자체를 담아내기 위해 철저하게 친환경적이고 자연의 이미지를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을 구현하고자 한다. 양평 곳곳의 계곡을 형상화한 Canal Space와 숲과 마당, 산을 오르는 듯한 산책로 등의 건축적 언어로 이들을 표현해 내고자 한다. 자연과 더불어 예술과 문학을 논했던 대지가 기억하는 과거의 행위들은 새로운 형태의 문화 컴플렉스로 프로그램되어 자연과 더불어 풍류를 읊었던 과거의 역사가 지녔던 행위들을 그대로 재현해 낼 것이다. 본 대지에 대한 치유와 회복은 양평읍내를 더 이상 그냥 지나쳐가는 회색 도시가 아닌 양평의 모든 자연과 산하를 담아낼 수 있는 자연이 질펀히 묻어있는 공간으로 변모하는 시너지효과의 첫 시발점이 될 것이다.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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