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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일반분야] 시간적 장소성 : 알뜨르 비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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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이라는 개념을 생물학적 관점에만 국한하지 않고 확장한다면, 더 넓은 의미를 포함할 수 있다. 이 곳에서는 제 3의 종을 새롭게 정의하여 사람과 자연, 그리고 문화의 상호의존성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한다.


 제주도의 알뜨르비행장은 일반적인 건물의 사이트와는 다른 특수성을 지니는데,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는 공간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지어진 격납고들은 약 1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방치되어 있다. 현재 논밭으로 변해버린 이 사이트에서 격납고는 그저 과거의 의미에 머무른 채, 그 역할을 잃어버렸다. 격납고는 이 사이트에서 또 다른 하나의 소외된 ‘종’으로, 사이트 내 모든 종- 자연, 인간, 문화유산이 함께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이를 통해 버려진 문화유산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동시에 인간을 자연과 문화에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기능한다.


 섯알오름을 배경으로 나란히 놓여진 건물은 외관상으로도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자연의 일부로서 이질감을 주지 않는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건물의 프로그램도 자연을 기반으로 순환하는 시스템을 갖추어, 마치 독립적인 도시처럼 하나의 자립 단위로서 기능한다. 이처럼 본 프로젝트는 단순한 건물의 기능을 넘어서 이 지역의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해내는 지속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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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대상 수상작은 방치된 문화유산을 새로운 종으로 규정하고 자연, 인간, 문화유산이라는 모든 종이 함께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사이트로 선정한 알뜨르비행장은 1937년부터 광복 전까지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위해 군사요충지로 조성한 곳이다. 당시 건설된 지하 벙커와 비행기 격납고 등은 우리나라의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문화유산은 인류의 역사와 가치를 지닌 것으로 후대에 물려 주어야 하는 미래의 자산이다. 그러나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알뜨르비행장은 근본적 태생으로 인해 치욕의 산물로 인식되고 있으며, 풀만 무성하게 자랄 뿐 소외되고 방치된 채로 남아있다. 


 대상 수상작은 사이트가 가진 인문·자연환경의 특성을 분석하여 지역에서 재배되는 작물의 가공, 포장, 판매, 체험, 관광 서비스를 연계한 FOOD HUB를 제안하였다. 무질서하게 흩어진 격납고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각각의 기능을 가지고 서로 연결되면서, 자연 속에서 순환 가능한 시스템을 제공한다. 땅이 기억하는 시간과 장소성을 존중하기 위해 역사적 레이어를 층층이 쌓고, 땅의 과거 흔적들과 지역성을 가진 요소들을 분석하여 파라메트릭 디자인을 통해 주변 경관과 어울릴 수 있도록 형태를 구축하는 방식은 논리적이었다. 이렇게 비정형적으로 구축된 형태가 단순히 심미적인 것을 벗어나 지역의 미기후를 고려한 빗물 활용 에너지시스템과 결합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러나 프로그램의 적합성, 평면 구성과 기능, 비현실적인 대형 구조물의 스케일, 구조 재료 선정 등은 학생작품으로서의 한계가 느껴졌다. 패널과 작품설명서만을 심사하는 1차 심사에서 탈락 위기도 있었지만, 2차 프리젠테이션 심사에서 여러 심사위원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대상 수상작은 흉물스럽게 방치된 콘크리트 구조물이 지역의 경제를 회복하고, 자연적으로 순환할 수 있는 생태계 속에서 공존할 수 있다는 건축적 아이디어를 제안하였다. 철거의 대상이자 개발을 저해하는 요소로 인식되는 문화유산을 긍정적 인식으로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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